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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바꾸는 도시의 운명 [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서울의 부동산 민심이 6월의 심판대를 향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면, 이제 시선을 수도권 바깥으로 돌려보자. 지방선거는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집값이 아닌 다른 무게로 6월을 기다리는 도시들이 있다. 비수도권의 지자체들은 저마다 ‘기업 유치’와 ‘인구 유입’을 공약 1순위로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그 경쟁의 무기로 꺼내드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전입 지원금 ▲청년 정착금 ▲민생지원금. 형태는 달라도 결국 ‘현금’이다. 돈으로 사람을 부르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 돈은 사람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진짜 주목해야 할 공약은 무엇일까. 때마침 그 답을 가늠케 하는 법 하나가 6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분산에너지법). 이름만 들으면 전력 전문가들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 법이 지방선거와 맞물려 작동하기 시작하면 도시 간 경쟁의 판도를 근본부터 바꿀지도 모른다.티부의 발로 하는 투표, 기업은 전기를 따라간다1956년 미국 경제학자 찰스 티부는 평범한 이사 결정 속에 거대한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봤다. 사람들은 투표소에서 도장만 찍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조건을 갖춘 동네로 ‘이사’를 가는 방식으로도 선택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를 흔히 ‘발로 하는 투표’(Voting with feet)라고 부른다. 생각해보면 익숙한 장면이다. 아이 학교 때문에 학군 좋은 동네로 이사하고, 은퇴 후엔 공기 좋고 의료시설 있는 소도시로 내려간다. 그 이사 결정 하나하나가 사실은 지방정부에 보내는 강력한 신호다. “당신네 도시는 내 선택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티부는 시민이 늘 이 질문을 발로 던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오늘날 이 이론은 기업 입지 경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클라우드 서버 시설 같은 첨단 인프라는 엄청난 전력을 소모한다. 이들이 공장 부지를 고를 때 따지는 첫 번째 조건 중 하나가 전기료다.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우리 지역은 전기료가 경쟁력 있다”며 손짓하는 것은 바로 이 발로 하는 투표를 기업에게 유도하는 전략이다.6월의 법이 바꾸는 도시 경쟁의 문법분산에너지법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내 동네에서 만든 전기는 내 동네에서 먼저 쓴다.’ 지금까지는 정반대였다. 지방 앞바다와 들판에서 만든 전기가 수백 킬로미터 송전탑을 타고 수도권 데이터센터까지 달려갔다. 전기를 만든 지역 주민들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부담은 고스란히 떠안으면서도, 전기료 혜택은 누리지 못했다. 이 법은 그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지역 안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구조를 만들고 그 지역엔 전기료 혜택도 준다. ▲울산 ▲제주 ▲부산 ▲전남 ▲경북 등 7개 지자체가 이미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 됐다. 2025년 11월 ▲전남 ▲제주 ▲부산(강서) ▲경기(의왕)가 1차로 지정된 데 이어 같은해 12월에는 ▲경북(포항) ▲울산 ▲충남(서산)이 추가로 확정되며 첫 라운드 경쟁이 마무리 됐다. 특구로 지정된 지역은 전력 직거래가 가능해지고 기업 유치 경쟁력이 생긴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인증을 필요로 하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를 직접 조달할 수 있는 지역은 단순히 ‘전기가 싼 곳’이 아니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곳’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이 취임 직후 맞닥뜨릴 가장 현실적인 과제가 바로 이 경쟁이다. 다만 이 과정을 단순히 ‘비수도권의 기회’로만 볼 일은 아니다. 수도권도 이 변화 앞에서 근본적인 고민을 피할 수 없다. 수도권의 전력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고, 소각장과 데이터센터 입지 문제는 서울과 인접 지역 사이의 갈등을 점점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생산이든 폐기물 처리든, 수도권 역시 더 이상 외부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자각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시작될 필요가 있다.현금이 사람을 붙잡을 수 있을까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돈이 사람을 붙잡을 수 있을까. 현금성 지원 경쟁은 이미 전국으로 번졌다. 1인당 10만~30만원의 민생지원금, 전입 대학생 지원금, 출산장려금. 재정자립도가 30% 아래인 기초지자체가 전국의 80%를 넘는 상황에서도 이 경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방 현실이 절박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당장 사람이 떠나는 마당에 현금 지원은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볼 대목이 있다. 돈을 줄 때만 잠시 머무는 인구는 ‘손님’이지 ‘주인’이 되기 어렵다. 옆 동네에서 10만 원을 더 주겠다 하면 언제든 다시 '발'을 움직여 떠날 준비가 된 이들에게 쏟아붓는 예산은, 도시의 기초 체력을 키우기보다 재정을 고갈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티부 이론으로 돌아가보면, 사람은 단순히 이사 비용이 싸서 이동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구조적 이유가 있을 때 비로소 이동하고 정착한다.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돼 기업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면 인구가 따라온다. 에너지 수익의 일부를 지역 주민에게 환원하는 모델은 현금 지원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착 유인 효과를 만든다. 이것이 현금 살포와 다른 점은, 세금을 쓰는 게 아니라 지역이 만들어낸 가치를 지역민에게 되돌린다는 데 있다.2026년 3월 발표된 조사(기후정치바람, 2026 지방선거, 유권자의 선택: 기후가 표심을 흔든다)에 의하면 유권자의 53.5%는 “기후·에너지 공약이 좋으면 정치 성향이 달라도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에너지는 이미 환경단체만의 언어가 아니다. 전기료 걱정을 하는 시민, 공장 부지를 찾는 기업인,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는 청년이 모두 같은 질문을 향해 있다. 6월의 투표장에서 후보들에게 물어보자. “우리 도시가 전기를 어디서, 어떻게 가져올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 답이 도시의 다음 10년을 가를 것이다.

2026.03.28 10:00

4분 소요
국제행사 줄줄이 취소·연기…멈춰선 중동 마이스 시장 [E-MICE]

여행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등 중동 지역에서 열리던 전시·박람회, 국제회의 등 행사들이 대규모 취소·연기 사태를 맞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장기전 가능성을 띠면서 사태를 관망하던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연기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개전 초반 ‘라마단’ 비수기와 겹쳐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성수기에 접어들어 행사 취소·연기로 인한 피해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카타르 컨설팅 기업 노스본 어드바이저리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 전쟁 발발 이후 중동 지역에선 100여 건의 행사가 취소·연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전시이벤트서비스연맹은 최근 “중동 지역 내 긴장 상황이 지속되면서 항공·물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동 전역에 대한 여행경보(여행제고·출국권고) 발령으로 원활한 국제 행사 개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때 폐쇄됐던 중동 지역 영공과 항공 노선은 현재 운항을 재개한 상태지만, 여전히 높은 불확실성으로 운항 횟수와 편수를 줄이거나 우회 노선을 이용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항공은 도하행 노선은 내달 30일까지, 두바이와 바레인, 텔아비브, 암만 등 항공편은 5월 말까지, 아부다비 노선은 오는 10월까지 운항 중단을 결정한 상태다.스포츠·비즈니스 이벤트 줄줄이 취소·연기국제자동차연맹(FIA)는 최근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1’(F1) 바레인 사키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릴 예정인 그랑프리 대회를 전격 취소했다. 호주 멜버른 그랑프리에 이어 4월 12일과 19일 각각 열릴 예정이던 대회는 최근 긴장 상황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결국 취소 사태를 맞았다. FIA는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대회 취소에 앞서 지난 8일 호주 그랑프리 개막을 앞두고 열려던 카타르항공 후원의 VIP 행사와 카타르 도하 챔피언십(WEC)도 취소했다.F1 그랑프리 대회를 소유한 ‘리버티 포뮬러1’은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대회 취소로 올 시즌 레이스 횟수가 24개에서 22개로 줄면서 주가가 10% 하락했다.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F1 회장 겸 최고경영자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가 강행 개최를 원했지만, 현지 상황을 고려할 때 대회 취소만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이란의 무차별 보복 공격의 3분의 2가 집중된 두바이에선 예정됐던 글로벌 비즈니스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연기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마케팅 분야 세계 최대 국제 행사인 ‘어필리에이트 월드 글로벌’은 이달 2일 개막을 불과 이틀 앞둔 상태에서 취소됐다. 갑작스런 취소로 개최지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현지에 강연과 공연, 전시 등을 위한 장비와 인력 투입을 마친 주최사인 홍콩 VCEGH는 수십억 원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VCEGH 측은 “언제 어디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 상황으로 100여 개국 7000여 명에 달하는 참가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라며 취소 이유를 밝혔다.세계 최대 암호화폐 행사 중 하나인 ‘토큰(TOKEN) 2049’는 4월 29일과 30일로 예정된 올해 행사를 내년 4월 21일과 22일로 연기했다. 개전 초반 “일정 변경은 없다”던 주최측은 이란의 보복 공격이 두바이에 집중되면서 결국 행사 연기로 입장을 바꿨다. 두바이 마디나트 주메이라 호텔에서 열리는 행사엔 150개 국가에서 1만 5000여 명, 200개 이상의 전시업체가 참가할 예정이었다.3월 30일과 31일 두바이에서 JP모건과 스위스 사모펀드 파트너스 그룹이 열려던 ‘중동·북아프리카(MENA) 콘퍼런스’는 일정을 5월로 바꾸면서 개최지를 스위스 취리히로 변경했다. 토큰 2049에 이어 5월 1일과 2일 두바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블록체인 국제 콘퍼런스 ‘TON 게이트웨이’는 아예 올해 행사를 취소했다. 두바이 코카콜라 아레나에서 75개국 1만 3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6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세계 최대 규모 강연 행사 ‘메가 캠퍼스 서밋’은 일정을 9월로 연기한 상태다. 고유가에 항공·물류비 증가…행사 수요 감소 우려그나마 학술대회, 콘퍼런스는 원격 화상회의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제품과 여객 운송이 수반되는 전시·박람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치한 국제회의는 줄줄이 취소 사태를 맞고 있다. 전체 사업 중 중동 비중이 12%에 달하는 시가 총액 2조 원대의 세계 최대 전시 주최사 인포마(Informa)는 이달 들어 주가가 7% 가까이 급락했다.이달 말 열릴 예정이던 ‘도하 패션쇼’는 카타르 정부가 전시컨벤션센터, 호텔 등에서 열리는 다중 행사에 대한 전면 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일찌감치 취소됐다. 세계대중교통협회(UITP)는 다음달 두바이에서 열려던 대중교통 분야 세계 최대 국제회의 ‘UITP 서밋’를 취소하고 차기 행사를 내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기로 했다.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아부다비에서 열릴 예정이던 마이스(MICE) 전문 박람회 ‘M&I 엑스포’, 국제테마파크협회가 이달 31일부터 아부다비에서 열려던 중동 지역 최초 ‘국제 테마파크 엑스포’는 일정을 내년 4월로 미루면서 사실상 올해 행사를 취소했다. 야곱 월 국제테마파크협회 회장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행사 연기는 300개가 넘는 기업의 안전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오랜 기간 준비해온 행사를 조명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듯 간단히 취소·연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사우디아라비아가 1조7000억달러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5월 열려던 건축 박람회 ‘빅5 콘스트럭트 사우디’, 다음달 8일 두바이항 일대에서 개막하는 ‘두바이 국제 보트쇼’는 각각 일정을 올 9월과 11월로 미뤘지만, 개최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오는 6월로 예정된 ‘두바이 호텔쇼’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페어몬트 더 팜 등 현지 호텔이 이란의 미사일, 드론 공격을 받으면서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문제는 전쟁으로 인한 행사 취소·연기 여파가 중동 지역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전 우려 외에도 유가 급등으로 늘어난 물류·항공비 부담이 국제 전시컨벤션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는 중동 지역 영공 폐쇄에 따른 항공편 결항으로 1만여 명 가까운 바이어가 참가를 취소했다. 그레고르 비슈코프 국제 전시이벤트서비스연맹 사무총장은 “대화와 연결, 협력이 기본이자 주된 목적인 전시컨벤션 행사에 갑작스러운 영공·해상 폐쇄로 인한 화물·여객 운송 차질은 치명적인 리스크”라며 “중동 지역 내 긴장 상황이 지속할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 회복세에 있던 전시컨벤션, 이벤트 시장이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2026.03.28 10:00

5분 소요
호르무즈發 충격, 에너지 위기 넘어 ‘공급망 붕괴’로 [스페셜리스트 뷰]

산업 일반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 작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이 현실화됐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다시 세계 경제의 핵심 리스크로 떠오른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2024년 기준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4분의 1 이상, 글로벌 LNG 교역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대표적인 초크포인트다. 즉, 이번 사태는 중동의 지역 분쟁에 그치지 않고, 세계 에너지와 산업 공급망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충격으로 봐야 한다.과거와 달리 생산 리스크로 번져이번 위기가 과거와 다른 점은 단순한 통과 리스크가 아니라 생산 리스크로까지 번졌다는 데 있다. 이란은 정권에 대한 위협을 받을 때마다 호르무즈 봉쇄를 위협해 왔지만 역사적으로 해협이 완전히 폐쇄된 적은 없었고 대부분 위협이나 부분적 교란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박 운항 ▲보험 ▲물류가 동시에 위축되며 통항 차질이 사실상 마비에 가까운 수준으로 심화됐다. 여기에 더해 카타르 LNG 설비 일부가 공격을 받아 생산 차질까지 현실화됐다. 카타르에너지는 전체 LNG 수출능력의 17%에 해당하는 물량이 3~5년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고 한국을 포함한 일부 장기계약 물량에 대해서는 불가항력 가능성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물류 교란을 넘어 공급 자체가 줄어드는 국면으로 전환됐음을 뜻한다. 외교적 긴장이 완화되더라도 생산설비 복구가 지연되면 공급은 즉각 회복되기 어렵고, 에너지 가격도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대체 경로도 충분하지 않다. 사우디와 UAE에는 호르무즈를 우회할 수 있는 송유관이 존재하지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실제 추가로 활용 가능한 우회 여력을 하루 약 260만 배럴로 추정한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전체 물량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다. 더구나 이 우회 인프라는 주로 원유 중심이다. ▲LNG ▲LPG ▲나프타 ▲헬륨 ▲유황과 같은 주요 에너지·산업 원자재는 해상 운송 의존도가 높고 대체 수송 수단이 제한적이거나 사실상 없다. 이번 위기의 핵심 제약은 우회 경로 부족 자체보다, 대체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에 있다. 희망봉 대우회는 항해 기간과 연료비를 크게 늘린다. 후티 세력의 홍해 공격 재개로 수에즈 운하 경유까지 불안해진 상황에서, 우회는 해법이라기보다 비용만 높이고 공급 불확실성은 더 키우는 임시적 대응에 가깝다.가격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브렌트유는 단기간에 급등하며 장중 119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유가는 외교적 기대와 정책 대응에 따라 단기 변동성을 보이고 있지만, 생산설비 피해가 실제 공급 감소로 이어질 경우 상방 압력은 쉽게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LNG는 이번 사태에서 가장 취약한 품목 가운데 하나다. 원유는 전략비축을 통해 일정 기간 완충이 가능하지만, LNG는 저장과 비축의 기술적·경제적 제약이 커 장기 비축보다 지속적 공급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미 아시아 각국과 유럽의 조달 경쟁이 가세하면서 스팟 시장 가격은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시나리오별로 보면, 단기 공급 충격 국면(S1·수일~3주)에서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105~125달러, LNG 현물 가격은 60~90% 상승하는 수준이 예상된다. 중기 공급 차질 국면(S2·1~3개월)에서는 유가 120~160달러, LNG 100~140% 상승이 가능하며, 구조적 공급 충격 국면(S3·3개월 이상)으로 넘어가면 브렌트유는 150~180달러, LNG는 150~200% 상승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 산업 평균 생산비는 4.2%에서 9.4%까지, 제조업은 5.4%에서 최대 11.8%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서비스업 역시 1.4%에서 3.1% 수준의 비용 상승을 피하기 어렵다. 에너지 가격 상승, 산업 전반으로 확산이처럼 에너지 가격 상승은 단순한 비용 증가에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이는 특정 산업에서 시작되는 충격이라기보다 거의 모든 산업에 동시에 작용하는 공통 비용 상승 요인에 가깝다. 다만 강도는 산업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정유·전력·가스 같은 에너지 집약 부문에서 충격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이후 화학·철강·비금속 같은 중간재 산업을 거쳐 제조업 전반의 원가 구조로 전이된다. ▲화학 ▲비금속광물 ▲1차금속제품 등은 상대적으로 높은 영향을 받고 서비스업에서는 운송 부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도체와 자동차처럼 직접적인 에너지 의존도는 높지 않은 산업도 핵심 소재 공급 차질과 물류 지연을 통해 상당한 간접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를 감안하면, 단기에는 비싸게 들여오는 문제가 중심이지만 장기화 국면에서는 제때 들여오지 못하는 문제가 더 큰 위험으로 바뀐다. 유가와 LNG 가격이 높은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해상 운임 상승과 운송 지연이 결합되면, 기업이 실제로 부담하는 조달 비용은 통계상 추정치보다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가격 상승과 물류 제약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충격이 비선형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즉, 장기화의 핵심은 단순한 가격 급등이 아니라, 산업활동을 떠받치는 중간재와 물류 흐름의 불안정성이 구조화된다는 데 있다. ▲LNG ▲나프타 ▲에틸렌글리콜 ▲LDPE 같은 품목은 한국의 대중동 수입 비중이 높으면서 동시에 중동의 글로벌 공급 비중도 커, 가격 상승과 물량 제약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프타는 에틸렌·프로필렌·합성수지로 이어지는 석유화학 밸류체인의 출발점이다. 나프타 조달이 흔들릴 경우 원가 상승을 넘어 플라스틱, 포장재, 타이어, 자동차 부품, 전자부품 등으로 충격이 빠르게 확산된다.또한 특정 품목의 직접 수입 비중이 낮더라도, 중동이 글로벌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면 국제 가격과 제3국 경로를 통해 간접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 한국은 중동산 유황을 대규모로 직접 수입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유황이 황산과 인비료의 핵심 원료라는 점에서 글로벌 공급 변동의 영향을 비껴가기 어렵다. 장기화될 경우 국내 충격은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나특히 인비료 원료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는, 중동발 원료 차질이 중국의 생산 축소나 수출 통제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한국의 조달 불안과 가격 상승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중국은 과거 요소수 대란 당시 요소 수출을 사실상 막았고, 이후에도 비료와 관련 원료의 통관·수출을 반복적으로 조절해왔다. 유황이 황산과 인비료로 이어지는 경로가 있다면, 무수암모니아는 질소비료로 이어지는 또 다른 핵심 고리다. 문제는 이 무수암모니아 역시 중동의 생산·교역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결국 중동발 공급 충격은 산업 원가 상승에 그치지 않고, 비료 가격 급등과 농업 생산비 부담, 식품 물가 상승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이미 전쟁 이후 일부 지역에서는 비료 공장 가동 차질과 요소 가격 급등, 공급 지연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충격은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정유·발전·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에너지 집약 업종의 원가 부담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둘째, 비료·물류·식품으로 이어지는 생활물가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 셋째, 일부 업종은 단순한 가격 문제를 넘어 원재료 조달 지연과 생산 차질에 직면할 수 있다. 장기화 국면의 본질은 유가 상승 그 자체보다, 산업활동을 지탱하는 중간재와 물류 흐름의 불안정성이 커진다는 데 있다. 시사점은 분명하다. 단기적으로는 비축유 방출과 대체 공급선 확보를 통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을 버는 조치에 가깝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와 산업 원자재를 분리해 볼 것이 아니라, 나프타·헬륨·암모니아·에틸렌글리콜 등 에너지 연계 산업재까지 포함한 통합 공급망 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공급망 전체를 겨냥한 구조적 전략으로 전환해야특히 나프타 등 비에너지 핵심 소재에 대한 전략 비축이나 최소 재고 체계 도입도 검토할 시점이다. 에너지 전환 역시 자동적인 해법은 아니다. 수소와 암모니아 역시 상당 부분 천연가스 기반 공급망에 연결돼 있는 만큼, 전환 정책과 공급망 다변화는 함께 추진돼야 한다. 위기 이후의 기회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 우회가 장기화될 경우 선복 수요 증가로 조선·해운 산업에는 중기적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사태 진정 이후에는 중동 지역의 에너지·인프라 재건, 방산, 식량안보 관련 투자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를 단기 수주로 끝내지 않고, 장기 산업협력 구조로 연결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더 이상 유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응 역시 가격 관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류·소재·비료·식품까지 잇는 공급망 전체를 겨냥한 구조적 전략으로 전환할 때다. 필자는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이다. 중동 및 이슬람권의 경제·산업 구조와 에너지·공급망을 연구하고 있다. 한-중동 협력포럼, 국회 글로벌 외교안보포럼 등에서 연사로 활동하며 정책·산업 현장에서 협력 전략을 제시해왔다. 최근에는 중동의 에너지 구조 변화와 산업 다각화, 그리고 이 변화가 한국의 산업협력 및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2026.03.28 09:00

6분 소요
서울 유명 병원들도 거절했다…‘1경 시장’에 장흥이 뛰어든 이유 [길에서 만난 사람들]

전문가 칼럼

“약초는 시장에서 파는 원물이 아녀. 기나긴 인고를 견뎌갖고 대지가 품은 기운을 사람한테 고스란히 전해주는 가장 정직한 메신저지.”서울 광화문을 출발해 정남(正南)으로 한참을 내달려야 닿는 전남 장흥. 춘분(春分)의 훈풍이 내려앉은 장흥읍 ‘장흥힐링테라피센터’의 문을 열면, 코끝을 찌르는 진한 생약초 향기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단순히 향기롭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심의 경쟁 속을 버텨온 이들이 이곳의 공기와 마주하는 순간, 뇌와 몸의 긴장은 일순간 무장 해제된다.이 변화의 중심에는 십수 년 지기 고향 친구인 배권세 장흥군신활력플러스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과 설승환 원광대 장흥통합의료병원 사무국장이 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장흥의 생약초와 의료 인프라를 결합해, 시골 마을의 자원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미쳤다” 소리 들으며 8년...잡초를 브랜드로 만든 집념장흥은 예부터 생약초 특구였으나, 그동안은 단순히 원물을 수확해 판매하는 1차 산업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 배권세 이사장은 이를 서비스와 결합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사업의 성패를 걸었다.“원물(原物) 판매라는 1차 산업의 굴레에선 미래가 없었제. 매년 7.6%씩 쑥쑥 크는 글로벌 웰니스 시장의 핵심은 ‘서사’라니깐. 도시 사람들이 바라는 거는 약초 자체가 아니여. 그 약초가 내 몸에 닿아갖고 일으키는 ‘회복의 드라마’지.” 배 이사장은 시스템 구축에만 7년 6개월을 쏟았다. 당시의 막막함을 그는 투박한 말투로 회상한다. “처음엔 다들 미쳤다고 했소. 돈도 안 되는 풀뿌리 잡고 뭐 하냐고. 근데 우리 약초가 향기로 터져 나와 사람을 살리는 꼴을 꼭 보고 싶었응께 그랬제.”그는 외부 전문가 대신 지역 주민 35명을 직접 선발해 8년간 정예 테라피스트로 양성했다. 장흥 자생 약초로 만든 13종의 화장품 브랜드 ‘이로우미(Iroumi)’는 그와 주민들이 함께 빚은 인고의 산물이다. 센터 3층 테라피실에서 5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아로마 패키지를 경험해 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장흥의 흙이 키운 약초 오일이 숙련된 테라피스트의 손길을 타고 전신에 퍼지는 순간, 8년의 세월이 응축된 향기가 몸 안의 독소를 밀어내는 듯한 감각이 전해진다.영하 110도에서 만나는 ‘완벽한 리셋’테라피센터에서 향기로 몸을 달랬다면,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장흥통합의료병원 2층 ‘전라남도 마음건강치유센터’는 그 치유에 의학적 신뢰를 부여한다. 이곳은 2025년 우수웰니스관광지로 선정되며 한국형 메디웰니스(Medi-Wellness)의 표준을 제시했다.설승환 사무국장은 양방·한방·대체의학을 결합한 ‘통합의학’을 웰니스 상품으로 정교하게 설계했다. “수도권 병원들은 수익이 안 나네, 너무 머네 해싸면서 손사래를 쳤제. 그란디 우리 장흥은 요 천혜의 자연 자본을 의학적 처방으로 딱 엮어볼 용기를 낸 거여.” 설 국장은 설립 당시의 절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서울에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은 다 찾아다녔제. 근데 다들 ‘너무 멀어서 수익 안 난다’고 손사래를 칩디다. 가슴이 타들어 갔는디, 그때 친구 배 이사장이랑 소주 한잔하면서 ‘우리 자존심 한번 세워보자’고 결심했소.”이곳의 강점은 ‘과학적 데이터’다. 맥파 검사와 스트레스 지수 측정 등 정밀 진단을 통해 내 몸의 피로도를 시각화된 그래프로 직면하게 한다. 특히 영하 110도의 극저온 전신 자극 장비인 ‘크라이오테라피 챔버’는 짧은 시간에 ‘완벽한 리셋’을 원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 독보적인 인기다. 3분간의 극한 체험 후 혈관이 팽창하며 몸속에 엔도르핀이 도는 그 짜릿한 감각은, 도심의 어떤 스파도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회복력을 제공한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하루 단 3팀에게만 문을 열어 최상의 몰입도를 보장한다. 입안에서 터지는 자연의 복원력장흥의 웰니스 비즈니스는 식탁 위에서도 완성된다. 장흥의 대표 특산물인 ‘무산(無酸)김’은 효율성 대신 정직함을 택해 성공한 사례다. 염산을 쓰지 않고 김발을 매일 뒤집어 공기 중에 노출하는 전통 방식은 생산 과정은 까다롭지만 프리미엄 시장에서 독보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여기에 지역 쌀을 활용한 ‘쌀빵’은 농업 자산을 현대적 푸드테크(Food-tech)로 확장해 소화가 편안한 기능성 식품 시장을 공략한다. 배 이사장은 “정직한 식재료가 바로 우리 지역 산업 경쟁력이여. 장흥 갯벌이랑 산이 정성껏 키운 식재료를 테라피랑 딱 묶어갖고 패키지로 내논께 지역 경제 전반에 활기가 도는 거제.”라고 설명했다. 힐링테라피센터 1층 갤러리와 북카페에서는 누구나 장흥의 쌀과 김으로 만든 웰니스 푸드를 가볍게 체험할 수 있어, 관광객들의 소비를 지역 경제로 직접 연결하고 있다.정부가 전국 7개 권역을 웰니스 클러스터로 육성하며 16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는 가운데, 장흥은 이미 미식과 의료, 테라피가 결합한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장흥의 성공은 시골 마을이 가진 보편적인 자원을 어떻게 전문적인 서비스 산업으로 승화시키느냐에 달려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두 친구는 자연에 순응하며 저마다의 치유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이 곧 자연입디다. 편백숲 우드랜드 펜션에서 하룻밤 묵고,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흥126타워에 올라가 보시오. 자연으로 돌아와 깊은숨을 한번 크게 쉬어 보는 거, 그것이 장흥이 제안하는 진짜 여행이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복원’이라니깐요.” 고향의 자원을 산업화하겠다는 두 주역의 안목과 실행력은 지역 소멸을 고민하는 대한민국 지자체들에 새로운 성공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2026.03.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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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경제, 버팀목 기업에 숨통 틔워줄 때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라면과 식용유 업체들이 오는 4월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로 했습니다. 라면의 경우에는 평균 4.6~14.6% 내리는데, 출고가 기준으로는 40~100원 가량입니다. 식용유 제품은 평균 3~6% 가량으로 출고가 기준 300원에서 최대 1250원까지 내리는 겁니다. 일부에서 인기 제품은 제외됐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내수 부진에 더해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고환율 등 혼돈의 국내외 경제 여건에서 ‘가격 인하’라는 결정은 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유통업계 임원은 “정부의 물가 안정 요청에 기업들이 적극 협조하는 것이지, 여력이 있어서 가격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기업은 지금 복합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오르면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쉽게 넘고 있는데요, 지난 3월 16일(1501.0원)에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2일 이후 처음으로 주간 거래에서 장중에 1500원을 넘었습니다. 정부는 어떻게든 1500원 선 아래로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중동 전쟁’이라는 대형 악재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 대부분이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인 만큼 고환율은 곧바로 비용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유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가격 인상 압력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을 인하한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을 감수한 결정입니다. 이를 잘 아는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변화의 시기에 상품 가격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처음 아닌가 싶다. 위기 극복에 동참해 준 기업들에 감사 인사를 드린다”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문제는 미국과 이란 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지도부를 잇따라 제거하고 있고, 이란은 보복을 외치고 있어 이번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립니다. 이러면 1970년대 석유 공급 부족과 유가 급등으로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은 ‘석유 파동’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습니다. 이는 경제 여건이 점점 나빠진다는 얘기여서 정부가 기업에만 기대어 문제를 헤쳐 나갈 상황이 아닙니다. 또 다른 업체 임원은 “국가적 위기에는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라면서도 “다만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나 법인세 부담 완화 등 최소한의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정부의 정책 지원과 규제 완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논의나 준비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 들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상법 개정,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노란봉투법 등 기업을 옥죄는 규제는 빠르게 강화하는 반면, 배임죄 폐지와 상속세 개편 등 기업들이 요구해 온 규제 완화는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기업들은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평상시가 아닌 비상 국면입니다. 세밀한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위기 대응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K-기업들이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보다 과감하고 실질적인 기업 지원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2026.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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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사가 스타트업의 '경영 실패' 책임을 묻는 게 맞을까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새해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창업 의욕을 꺾는 안타까운 소식이 잇달아 날아들었다. 첫 번째 소식은 투자자인 신한캐피탈을 상대로 한 3D 공간 데이터 플랫폼 스타트업 어반베이스의 항소심 패소다. 2023년 사업 악화로 회생 절차를 밟던 어반베이스에 대해, 신한캐피탈은 하진우 대표 개인에게 연대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했다. 신한캐피탈은 투자 주체가 벤처캐피털(VC)이 아닌 신기술사업금융사라는 점과, 연대 책임 청구가 아닌 ‘주식매수청구권’을 계약 근거로 내세워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투자사-창업자 간 위험 공유 원칙 깨지나창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번 판결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투자사가 피투자 기업 창업자 개인에게 기업 위기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과거의 악습인 연대 책임과 다를 바 없는 전례 없는 사례다.본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창업자는 투자 유치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투자사는 투자를 통해 그 위험을 떠안는 협업 방식이 상식으로 통용되어 왔다. 이를 통해 벤처 금융과 스타트업은 위험을 공유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투자사가 창업자에게 사실상 원금과 이자를 청구한 셈이어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양측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두 번째 소식은 부동산 조각 투자 플랫폼 루센트블록의 장외거래소 인가 심사 탈락이다. 2018년 설립된 루센트블록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우량 부동산에 소액 투자가 가능한 토큰 거래 시장을 개척해 왔다.문제는 올해 초 장외거래소 예비 인가 심사에서 루센트블록은 고배를 마신 반면, 한국거래소(KRX)와 넥스트레이드(NXT) 같은 대형 기관들이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루센트블록은 2021년 ‘혁신금융서비스(규제 샌드박스)’ 기업으로 지정된 이후 불모지였던 시장을 일궈왔다. 오랫동안 시장을 개척하고 사업성을 실증한 혁신 기업은 탈락하고, 시장을 관망하던 대형 기관들이 그 열매를 가져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과거 제도권 금융 기관들은 법적 규제와 해석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토큰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당시 시장을 만들고 혁신을 이끈 이들은 핀테크 스타트업 창업자들이었다. 그들은 입법 기관을 설득하고 행정 기관에 호소하며 길을 닦았다. 정작 인가 심사에서는 시장 밖에서 관망하던 기관들만 통과했으니, 심사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법과 제도 아닌 ‘창업 문화’라는 관점 필요 어반베이스에 승소한 신한캐피탈과 인가 심사를 통과한 대형 기관들은 모두 법적으로나 절차상 문제가 없으며 정당한 결과라고 주장한다.필자의 심정은 복잡하다. 법적 결함이 없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정당한 결과’라는 주장에는 수긍하기 어렵다. 신한캐피탈이 어반베이스의 스타트업 특성을 몰랐을 리 없다. 연대 책임을 묻지 않는 벤처 금융의 본질 또한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루센트블록 사례도 마찬가지다. 인가 심사 기관이 기존 제도권 금융의 잣대가 블록체인 기반 혁신 사업 심사에 적합하다고 믿었는지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금융 시장의 낡은 기준으로 혁신 기술 사업을 측정한 것부터가 오류라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금융 관료들의 ‘짬짜미’ 심사라는 혹독한 비판까지 내놓고 있다.법은 허점이 있을 수 있고, 제도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법이 ‘최소한의 도덕’이듯, 제도는 사회 구성원이 합의한 인식과 문화라는 토대 위에서 명문화되어야 한다.창업 영역도 마찬가지다. 투자자와 창업자가 위험을 공유하는 파트너임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이들의 업적을 우대하는 문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올바른 제도가 정립될 수 있다. 우리 생태계는 이번 사태들을 생태계 내부의 윤리와 공익을 저해하는 처사로 받아들이고 있다.새해 초 이재명 정부는 ‘국가창업시대’를 선언하고, 대국민 창업 오디션인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등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생태계도 활기를 되찾는 모양새다.국가 주도의 행사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정부는 건강한 창업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더욱 세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반베이스나 루센트블록의 사례처럼 혁신가들의 노력이 제도라는 이름 아래 부정당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진정한 국가창업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가 단순한 행사를 넘어, 더 나은 창업 문화를 만드는 마중물이 되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필자는 전남대 경영대학 교수로 창업생태계와 창업실패를 연구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창업생태계 현장을 모두 경험하고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창업생태계를 가까이 하면서 창업자들과 유연하고 창의적인 시각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6.03.21 10:00

3분 소요
AI 변호사는 인간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김기동의 이슈&로(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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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지난 2022년 11월 생성형 AI 챗GPT가 등장할 때만 해도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AI’라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제 AI 에이전트의 시대가 찾아왔다. 오픈클로(OpenClaw),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 같은 도구들은 AI가 스스로 작업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CES 기조연설에서 ‘피지컬 AI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AI가 디지털 공간을 넘어 물리적 세계의 행위 주체로 확장된다는 의미다.이 변화가 산업과 일자리에 미치는 충격은 전방위적이다.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종말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직원 수 기준으로 요금을 산정하는 기존 소프트웨어 사업 모델이 유지될 수 없다는 뜻이다. 앤트로픽이 클로드 코워크 기업용 플러그인을 발표한 직후 불과 일주일 만에 글로벌 소프트웨어 주가에서 약 1조 달러가 증발했다. 시장은 이미 답을 내리고 있다.어떤 직업이 위협받는가는 항상 대중의 관심사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는 AI가 2030년까지 초급 화이트칼라 업무의 절반을 자동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OpenAI·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언어·문서 작성 역량에 의존하는 업무일수록 AI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분석했다. 변호사가 AI 대체 가능 직업 상위권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이유다.필자 역시 실무에서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법무법인 차원에서도 여러 영역에 AI를 도입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 과거라면 몇 시간이 걸리던 정리 작업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해졌고, 자료 탐색의 폭도 넓어졌다. 정형화된 서식 작성, 대량의 자료 검토, 유사 판례 검색 같은 반복 업무에서 AI는 이미 사람의 속도를 아득히 넘어섰다.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변호사와 그렇지 않은 변호사 사이에는 생산성 격차가 뚜렷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AI의 눈부신 발전은 오히려 인간 변호사를 대체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AI가 넘지 못하는 세 가지 한계첫째, ‘데이터의 고갈’이다. 대규모 언어모델은 방대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학습해 성능을 높여 왔다. 그러나 고품질 학습 데이터는 무한하지 않다. 비영리 연구단체 에포크 AI(Epoch AI)는 2024년 논문에서 AI가 공개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고품질 텍스트 데이터가 2026년에서 2032년 사이에 바닥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료가 떨어지면 엔진도 멈춘다.둘째, ‘모델 붕괴’의 문제다.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다시 AI가 학습하는 순환이 반복되면 모델의 품질이 급격히 저하된다. 복사본의 복사본을 계속 만들면 원본의 선명함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온라인 공간에 AI 생성 콘텐츠가 넘쳐날수록 이 문제는 더욱 현실적인 위험이 된다.셋째, ‘환각’(Hallucination)이다. 법률 분야에서 이 문제는 특히 치명적이다. AI는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실제처럼 제시하거나, 없는 법조문을 그럴듯한 문체로 만들어낸다. 더 큰 문제는 전문가조차 한눈에 이상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법률 문서에서 이러한 오류는 단순한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 소송의 방향, 때로는 형사 책임 여부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AI가 틀려도 그럴듯하게 틀리는 세계에서 검증 능력은 곧 전문성이다.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결과물에 대한 전문가의 검증이 불가결함을 보여준다. 나아가 AI가 변호사를 대체할 수 없는 본질적 이유가 있다. 어떤 사건도 똑같지 않으며 많은 사건은 생물처럼 변화한다. 사실관계의 이면을 읽어 쟁점을 구성하고, 상황 변화에 맞춰 전략을 조정하며, 선례가 없는 영역에서 새로운 논리를 설계하는 일은 인간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실무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의뢰인의 막연한 호소 속에서 법적으로 의미 있는 쟁점을 포착해 내는 것이다. 의뢰인의 진술에는 중요한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이 뒤섞여 있다. 불리한 내용은 누락되거나 본인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변호사는 그 속에서 핵심을 가려내고 필요한 사실을 끌어내며 전체 구조를 다시 세운다. 이는 단순히 자료를 정리하거나 유사 사례를 찾는 차원이 아니다. 드러난 사실과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함께 읽어 법적 의미를 부여하는 판단의 영역이다. 데이터는 과거를 학습하지만 변호사는 지금 이 사건을 읽는다.협상과 변론에서는 이 차이가 더욱 뚜렷해진다. 상대방의 미묘한 태도 변화를 읽고 전략을 조정하는 일,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 취지에 따라 변론 방향을 즉각 수정하는 일, 의뢰인에게 불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최선의 선택을 함께 설계하는 일은 텍스트 생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법정은 살아있는 공간이다. AI는 그 공간에 없다.법은 고정된 정답의 목록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규범 체계이며 사회 변화에 따라 해석과 적용이 끊임없이 수정된다. 기존 법리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현실의 분쟁으로 나타나는 것이 법의 숙명이다. AI 창작물의 저작권, AI의 데이터 사용과 개인정보보호 문제처럼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고 사회적 합의가 형성 중인 영역에서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한 AI만으로 답을 찾기 어렵다. 어제의 데이터로 오늘의 분쟁을 해결할 수는 없다.결국 AI는 변호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 업무 방식을 바꾸고 있다. AI가 초안을 만드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초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과 책임의 가치는 오히려 커진다. 의뢰인이 궁극적으로 믿고 의지할 대상은 기술 자체가 아니다. 그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최종 결과에 책임지는 변호사다.AI의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역량, 그것이 AI 시대에 변호사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제 변호사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도구를 다루는 사람의 판단이 더 중요해진다. 변호사의 일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만 간다.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2026.03.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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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곧 민심’…2026 지방선거, 부동산 투표가 판을 흔든다[김현아의 시티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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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한국 정치의 오래된 진실 하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후보의 정치 철학도, 공약의 정교함도 아닌 ‘집값’이 유권자의 선택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정치학자들은 이 현상에 ‘부동산 투표’(Real Estate Voting)라 이름을 붙였고, 이제 그것은 단순한 학술 가설을 넘어 데이터로 입증된 한국 선거의 확고한 구조적 문법이 됐다. 물론 이번 2026년 지방선거에서 부동산 민심이 전체 선거판을 온전히 압도할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과 비상계엄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격랑이 남긴 여진이 여전히 유효하며 최근 이란의 전쟁상황이 대외적 안보이슈와 물가비상이라는 민생이슈로 국가적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에 집권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결집의 민심’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외적 변수가 단기적 충격에 그친다면 6월의 선거판, 특히 서울시장 선거를 뒤흔들 핵심 뇌관은 결국 부동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학계가 입증한 부동산 투표의 원리유권자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투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경제 투표’ 이론을 부동산과 연관지을때 학계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설명한다. 첫째는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다. 집권 세력의 부동산 정책이 피해를 줬다면 가차 없이 처벌을 내리는 방식이다. 숭실대 신정섭 교수의 논문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주택소유와 투표선택: 회고투표 vs. 자산투표’(2022)는 부동산 정책 실패가 어떻게 정권 교체로 이어졌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둘째는 자산 투표(Patrimonial Voting)다. 주택 보유자가 집값이 오를수록 자산 가치를 지켜줄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이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의 보고서 ‘2024년 총선에서의 자산 투표: 수도권 유권자를 중심으로’(2024)에 따르면, 자산 상위 집단이 보수 정당에 투표할 확률은 다른 집단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이미 부동산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유권자의 정치적 지향점을 결정하는 자산 가치의 척도로 작동한다.과거 선거 사례들은 부동산 투표의 실체를 선명하게 증명한다. 그 최초의 전국적 폭발은 2006년 5·31 지방선거였다.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집값 급등과 씨름했고 “집값 반드시 잡겠다”는 대통령의 잇단 공언이 빈말로 판명되면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 결과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선거사상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 이 선거는 부동산 민심이 지방선거를 통해 집권 여당을 심판한 최초의 원형으로 기록된다. 그 여진은 1년 후 대선으로도 그대로 이어졌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참여정부의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에 등을 돌리고 ‘규제 완화’와 ‘공급 확대’를 내세운 이명박 후보를 역대 최대 득표 차이로 선택했다. 연이어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서울 압승을 이끈 핵심은 ‘뉴타운·재개발’ 공약이었다. 이는 한국 선거사에서 ‘부동산 보상투표’의 전형적인 원형이 됐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연속적 선거 결과는 부동산 심판이 지방-대선-총선을 가리지 않고 작동하는 전국적 투표 메커니즘임을 확인시켜 줬다.반면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처벌의 정치’가 다시 서울을 기점으로 폭발한 해였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누적된 집값 폭등과 규제 일변도의 정책, LH 사태가 유권자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었고, 오세훈 후보의 압승은 그에 대한 준엄한 회고적 심판이었다. 이 서울의 민심 이반은 이듬해 전국 대선으로도 곧장 파급됐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유주택자들은 징벌적 과세와 규제에 분노해 자산 방어를 위해 결집했고 무주택 서민들은 ‘벼락거지’로 전락했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처벌 투표에 합류했다. 전혀 다른 지위의 두 집단이 ‘부동산 실패’라는 공통의 이유로 정권 심판에 가담했던 역설적 순간이었다. 2025년 5월 조기 대선에서는 탄핵이라는 거대 서사가 선거를 주도했지만, 서울의 득표율은 여전히 아파트 가격과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며 ‘부동산 계급투표’의 흔적을 뚜렷이 남겼다. 서울에서 시작돼 전국을 바꾼 ‘보상’과 ‘처벌’의 반복한편, 비수도권의 투표 방정식은 정반대다. 미분양 물량의 적체와 인구 감소로 인한 하방 압력 속에서 지킬 자산 가치가 사라진 곳에서 자산 투표는 무력하다. 비수도권 유권자들을 자극하는 것은 ‘소외감’이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수도권 집값 관리에 집중돼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중앙정부가 지방의 생존권을 방치하고 있다’는 분노가 표심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재명 정부가 ‘5극 3특’ 지방시대 정책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지금 서울의 유권자들은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의 기묘한 양면성 앞에 서 있다. 알맹이 없는 공급 대책은 실망을 안겼고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는 중산층 서민들의 재산권을 옥죄었다. 과도한 금융 규제가 더해지며 서민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현금 부자들만 유리한 불공정한 환경이 고착화됐다. 그러나 이 정책적 참사를 덮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 특유의 강렬한 상징 정치다. 공격적인 SNS 메시지와 다주택자 압박, 분당 자택 처분이라는 상징적 행위는 시장에 즉각적인 냉각 효과를 불러왔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급매물이 등장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민심이 대통령의 서사에 동조하는 기현상도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매매 가격의 일시적 하락 이면에는 전세 물량 실종과 전세의 월세 전환 가속화라는 임대차 시장의 붕괴가 진행 중이다. 결국 2026년 6월의 선택은 열려 있다. 유권자들이 대통령의 정치적 퍼포먼스가 주는 단기적 효과에 힘을 실어줄지, 아니면 누적된 정책 실패와 재산권 침해의 고통을 심판할지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서울의 부동산 민심은 지금, 6월의 심판대를 향해 소리 없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을 뿐이다.

2026.03.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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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기업이 만든 AI가 전쟁 핵심 전력 되는 시대[한세희 테크&라이프]

전문가 칼럼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최근 전면 공습은 50년 가까운 시간의 흐름이 누적된 결과다. 하지만 가까운 원인을 따지자면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민간인까지 납치 살해하며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뻗어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싸우는 한편, 레바논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 번군도 공격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는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란이 지원하는 이란 대리 세력들이다. 이어 이스라엘은 2025년 6월 이란을 기습해 주요 군사 및 핵 시설을 파괴했고 핵 과학자와 정치인 등을 암살했다. 미국도 이스라엘에 가세해 이란 핵 시설을 폭격했다. 이른바 ‘12일 전쟁’이다. 이후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이 이란 핵무장 포기 등을 놓고 벌인 지루한 협상은 결국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또 한 번의 대규모 공격으로 귀결됐다. 이란 둘러싼 갈등에서 ‘전쟁 AI’ 등장 현재 이란을 둘러싼 급박한 정세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서 비롯된 것처럼 지금 이란 공습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새로운 기술 하나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처음 논란이 된 바 있다. 바로 전쟁을 위한 인공지능(AI) 기술이다. 2024년 이스라엘 군이 민간인 사이에 섞인 하마스 병력을 식별하기 위해 AI를 쓰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스라엘은 ‘라벤더’라는 AI 시스템을 개발, 무리 중 누가 하마스 무장 세력에 참여하는 사람인지 식별했다. 여러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결 관계를 분석, 하마스 무장 조직원인 것으로 판단되면 폭격을 가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대 3만7000명이 라벤더 AI에 의해 병력으로 판단되기도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결정에 AI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로선 AI가 실제 전장에서 활용된 최대 규모 사례로 꼽힌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가능성을 보인 군사 AI 활용은 이번 공습에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미군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정부 고위 인사들, 주요 핵 시설과 군사 기지를 타격할 작전을 짜고 우선순위를 정할 때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의 ‘클로드’ 모델과 팔란티어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 등을 적극 활용했다. 179개 출처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메이븐에 클로드를 결합해 정보 수집과 표적 식별, 작전 계획 및 전투 결과 평가 등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이스라엘의 라벤더 AI가 하던 일을 훨씬 큰 규모로,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하게 된 것이다. 데이터를 분석해 공격 표적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찾아낸다는 점에서 둘은 같다. 1등 공신 앤트로픽, 도리어 퇴출 위협?하지만 세상에 주는 충격은 같지 않다. 팔레스타인 일대에서 무장 세력 참여자를 찾아내 제거하는 것과 한 나라 최고지도자와 고위 인사 수십 명을 추적해 은신처에 미사일을 보내는 일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앤트로픽 클로드는 올해 초 미군이 베네수엘라를 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붙잡아 올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른 나라의 방공망을 사이버 공격으로 마비시키고 최고 지도자와 고위 인사들의 동선을 낱낱이 파악해 미사일을 날리거나 특공대를 보내 체포하는 장면은 새로운 종류의 ‘초강대국’의 등장을 예감하게 한다. 팔레스타인의 라벤더에서 테헤란의 클로드까지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AI는 놀랄 정도로 발전했고, 생소하고 강력한 힘이 처음 등장할 때 늘 그랬듯 우리는 본능적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낀다. 이런 당혹 속에서 우리는 이 새로운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 정부와 앤트로픽의 최근 대립은 이 논의가 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란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앤트로픽 클로드는 마두로 체포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정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공습 직전인 2월 말 모든 연방 기관에 앤트로픽 기술 사용을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앤트로픽이 클로드를 국방부에 공급하는 조건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AI를 인명 살상 여부의 자율적 판단이나 내국인 대규모 감시엔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AI의 윤리적 활용을 강조하는 앤트로픽의 평소 기조와 부합하는 요구이나, 합법 범위 내에서 AI 사용 범위를 제약 없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미국 전쟁부와 입장이 갈렸다.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은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하고 국가안보 관련 시스템에서 앤트로픽 제품 사용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직후 시작된 이란 공습에서 앤트로픽의 AI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는 AI의 강한 능력을 활용하고자 하지만 민간 기업에 예속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기업은 강한 국가의 영향력 아래 스스로의 원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을 우려한다. AI는 제2의 핵무기아마도 제2의 핵무기와 같은 의미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큰 AI 기술을 놓고, 정부가 기술을 가진 민간 기업의 결정에 예속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리라 기대한다면 순진한 것일 터다. 경쟁 AI 기업들이 정부와 거래를 트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앤트로픽의 윤리적 원칙은 의미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오픈AI와 국방 관련 AI 활용에 대한 계약을 맺었고, 앤트로픽은 “경쟁사가 하는 만큼은 우리도 하겠다”며 원칙에서 물러나는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픈AI의 로봇 부문 책임자가 국방 계약 체결에 반발하며 퇴사하는 등 조직 내부는 뒤숭숭하다. 안보를 위해 최첨단 AI를 국가가 활용할 수 있게 해야겠지만, AI가 시민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겨누지 않게끔 통제하는 방법 논의가 필요하다. AI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지뢰나 화학무기, 집속탄 같은 위험한 무기의 사용을 국제 조약으로 규제하듯 AI 규제를 위한 국제적 약속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강대국이나 불량 국가는 이런 조약에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하더라도 규제를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내기는 하지만 말이다.

2026.03.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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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과 AI발 노동 대전환의 시대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두 번의 대통령(전 정부) 거부권, 경영계와 야당의 거센 반대를 뚫고 작년 입법화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이 6개월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3월 10일 정식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쟁의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도록 한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이에 하청업체 등 간접고용 근로자도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자동차·조선·석유화학업계 등 곳곳에서 하청 노조들의 원청 교섭 요구가 봇물 터지듯 분출되고 있습니다. 대형 노동자단체인 민주노총은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회피하는 사업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오는 7월에는 총파업까지 전개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동안 기업 경영진이 좀 더 유리했던 노사 환경에서 노란봉투법이라는 친노동법이 도입되면서 노동자들, 특히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던 비정규직·특수 노동자 등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일부 개선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라는 돌발 악재로 유가 및 환율이 요동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런 위기에서는 노사가 하나로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내부에서 노사가 갈라져 대립하게 돼 대응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사 관계는 늘 좋을 수가 없습니다. 또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양보를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어느 선에서는 서로 악수를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기업들이 국내외적인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기업들은 로봇 도입과 AI(인공지능) 전환의 시대를 맞아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전환의 흐름을 외면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게 자명한 만큼 다들 AI·로봇으로의 대전환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문제는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노조의 반발이 크다는 겁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개발하고 있는데, 노조측은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들여올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처럼 걸어 다니며 관절을 이용해 생산 작업을 할 수 있는 아틀라스가 생산 현장에 투입되면 고용 충격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도입이 된 것도 아닌데 반대부터 한 셈이어서 비판 여론이 컸는데요, 노조측은 “기술 발달을 저해할 생각이 아니라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한발 물러났습니다. AI·로봇이 일상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면서 노동 생태계도 큰 변화가 불가피한데요, 그렇다고 ‘일자리 축소’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은 미지의 세계인 만큼 노사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 길에서 노란봉투법이 갈등의 증폭제가 아니라 상생을 위한 숙의의 장을 여는 시발점이 되어야 할 텐데요, 이는 노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2026.03.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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