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이 수백억 원대 사기 조직의 총책을 직접 마주하고도 별다른 조치 없이 그대로 돌려보냈던 당시 상황이 담긴 통화 녹음이 공개됐다. YTN이 입수한 녹취에 따르면 대사관 측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현지 경찰 신고를 망설였던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해당 사기 조직의 총책인 강 모 씨는 지난해 11월, 여권 연장을 위해 자진해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강 씨는 이미 인터폴 적색 수배 중인 인물이었으며, 혐의는 약 120억 원 규모의 ‘로맨스 스캠’ 사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관은 강 씨를 체포하거나 현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단순히 여권 연장을 거부한 채 귀가 조치했다.당시 대사관 직원과 한국 경찰 수사관 간의 통화 녹취에 따르면, 대사관 측은 강 씨에게 수배 사실을 직접 알렸고, 수사관과의 연결까지 주선했다. 수사관이 "왜 수배 사실을 알려줬느냐"고 묻자, 직원은 "여권 발급을 거부하는 이유는 민원인에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수사관이 "이제 강 씨가 귀국하지 않고 도피할 수 있는 상황 아니냐"고 지적하자, 대사관 측은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대사관이 직접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고, 자수 권유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제 발로 들어온 민원인을 경찰에 넘기는 건 부담스럽다"고도 덧붙였다.결과적으로 대사관은 강 씨의 여권을 무효화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강 씨는 이후 잠적했다.녹취에는 강 씨와 수사관의 통화 내용도 담겼다. 강 씨는 자신이 선교 활동을 위해 캄보디아에 왔다고 주장하며,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친구가 명의를 빌려달라고 해서 아내와 함께 제공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수사관이 귀국을 권유하자, 강 씨는 "아내와 얘기해봐야 한다", "지금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시간을 끌었다.대사관은 이후 약 3개월간 아무런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올해 초에 들어서야 현지 경찰에 사건을 통보했다. 그 결과 강 씨는 현지에서 체포되었지만, 이후 석방됐다가 다시 한 번 검거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여전히 강 씨는 국내로 송환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캄보디아에 강 씨 부부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근 발표된 추방 대상자 명단에서도 강 씨 부부의 이름은 빠졌다.법무부는 어제 캄보디아 법무부 차관과의 면담에서 다시 한 번 강 씨 부부의 송환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캄보디아 당국의 구체적인 대응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수배 피의자를 눈앞에 두고도 ‘모양새’를 이유로 법적 조치를 피한 대사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국민적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